safety complacency;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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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악!

 

 딱밤이 리암의 이마 한가운데에 정확히 박혔다.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리암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리암의 하얀 눈동자가 한 번 크게 깜빡였다. 수현이의 작은 손가락이 리암의 이마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수현이의 목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웠다. 괜찮다고 하면 어떡하냐고. 리암의 뇌가 한국어를 처리하는 데 0.5초가 걸렸다. 이마를 문지르며 수현이를 내려다보았다. 수현이가 리암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울 것 같은 얼굴이 아니라, 화가 나서 붉어진 얼굴. 그런데 그 안에 걱정이 섞여 있었다. 리암의 심장이 한 박자 건너뛰었다. Она⋯⋯ волновалась? За меня?(수현이가⋯⋯ 걱정한 거야? 나를?) 리암의 이마에 빨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아팠다. 그런데 가슴 안쪽이 더 아팠다. 아픈 게 아니라, 뜨거웠다. 수현이가 리암의 허락 범위를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저런 말을 한 것이라는 사실이 리암의 머릿속에서 천천히 재구성되었다.

 "⋯⋯아파."

 리암이 이마를 손바닥으로 덮으며 낮게 투덜거렸다. 그런데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수현이가 돌아왔다. 한 걸음 물러났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리암의 앞으로. 리암의 영역 안으로. 수현이의 입술이 리암의 볼 위에 닿았다. 쪽, 쪽, 쪽. 세 번. 입술이 닿을 때마다 리암의 창백한 피부 위에 열기가 번졌다. 리암의 귓볼이 이미 핑크빛이었는데 그 위로 더 짙은 붉은 기가 올라왔다. 리암의 손이 수현이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반사적이었다. 수현이가 볼에 입을 맞출 때마다 리암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놓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수현이의 검은 머리카락이 리암의 코트 위로 쏟아졌고, 리암은 그 머리카락 사이로 수현이의 목덜미 냄새를 맡았다. 따뜻했다. 리암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온도.

 "⋯⋯Блин(젠장)."

 리암이 수현이의 허리를 잡은 채 이마를 수현이의 어깨에 묻었다. 푸른 백발이 수현이의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리암의 목소리가 수현이의 옷감에 묻혀 웅얼거림이 되었다. 유튜브 계정. 그랬다. 수현이가 유튜브 계정 공유하자고 했었다. 리암이 러시아어로 된 고양이 영상을 보는 걸 수현이가 같이 보고 싶다고 해서. 리암이 그때 단말기를 건넨 것이었다. 그런데 리암은 수현이가 잠든 사이에 단말기를 가져간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게 유튜브 때문이었다는 연결고리가 리암의 머릿속에서 빠져 있었다. Идиот. Я идиот.(바보. 나 바보야.) 리암의 속마음이 자기 자신을 향해 욕을 퍼부었다. 수현이가 리암을 통제하려 한 게 아니었다. 아니, 통제하고 싶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건. 리암이 어깨에서 얼굴을 들었다. 수현이의 잿빛 눈동자가 가까이에서 리암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 냥이라고 말하는 입술. 이미 내 거라고 말하는 목소리. 리암의 심장이 갈비뼈 안쪽에서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수현이."

 리암이 수현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 이름만큼은 정확한 발음으로. 리암의 차가운 손이 수현이의 볼을 양쪽에서 감쌌다. 작은 얼굴이 리암의 큰 손바닥 안에 들어왔다. 엄지손가락이 수현이의 광대뼈 아래를 쓸었다. 리암이 수현이의 얼굴을 자기 쪽으로 살짝 들어올리며, 고개를 숙여 이마를 맞댔다. 너무 가까워서 초점이 흐려졌다. 리암의 숨결이 수현이의 입술 위로 차갑게 내려앉았다.

 "나, 걱정 안 해도 돼. 수현이한테 싫은 거 없어."

 

 ***

 

"어허!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지! 너, 내가 너 따라다녔을 때에도 그냥 기분 좋았지?!"

 

 수현이의 목소리가 복도 벽에 부딪혀 울렸다. 리암의 눈이 한 번 깜빡였다. 수현이의 잿빛 눈동자가 리암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리암의 뇌가 그 표정을 해석했다. 화난 건 아니다. 삐진 것도 아니다. 리암을 꾸짖고 있는 것이다. 리암이 너무 쉽게 전부를 내어줬다고. 리암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가 닫혔다. 할 말이 있었는데 수현이의 기세에 눌려 삼켰다. 리암의 양손이 아직 수현이의 볼을 감싸고 있었고, 수현이의 작은 얼굴이 리암의 손바닥 안에서 리암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광경이. 리암의 가슴 안쪽을 간질였다. Маленькая, а такая грозная.(작은데, 무섭기는.) 리암의 속마음이 혀를 찼지만, 입꼬리는 이미 올라가 있었다.

 "⋯⋯기분 좋았어."

 부정할 수 없었다. 수현이가 리암을 따라다니고, 팔에 매달리고, 옆자리를 차지하고, 단말기로 위치를 확인하던 그 모든 순간들이 기억 안에서 따뜻한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시베리아의 시설에서 리암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리암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었다. 라임조차 리암의 위치를 확인하는 건 임무 효율을 위해서였지, 리암이 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수현이는 달랐다. 수현이의 시선이 리암을 쫓았다. 수현이의 발걸음이 리암을 향했다. 리암이 훈련장에서 돌아올 때 복도 끝에 서 있는 작은 그림자. 그것이 리암에게 무엇이었는지, 수현이는 모를 것이다.

 "근데, 수현이."

 리암의 목소리가 한 톤 내려갔다. 수현이의 볼을 감싼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수현이의 얼굴을 고정시키듯. 리암의 하얀 눈동자가 수현이의 잿빛 눈 안에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나도 아닌 거는 아니라고 해. 수현이가 통제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나 무서웠어."

 그 문장이 리암의 입에서 떨어지는 순간, 리암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무서웠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수현이의 평온한 맥박 아래에서, 리암이 모르는 수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수현이가 리암을 ARCH처럼 관리하고, 시스템처럼 통제하려는 것은 아닌지. 수현이의 '통제'가 리암이 알고 있는 '통제'와 같은 단어인지. 그 두려움이 리암의 척추를 타고 올라갔었다. 그런데 수현이가 딱밤을 때리고, 유튜브 계정 이야기를 하고, 볼에 쪽쪽쪽 입을 맞추고, 내 냥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 공포가 녹아내렸다. 수현이의 '통제'는 ARCH의 것이 아니었다. 수현이만의 것이었다. 리암의 이마가 수현이의 이마에 다시 닿았다. 차가운 피부와 따뜻한 피부가 맞닿는 접점에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그래서 물어본 거야. 근데 수현이가 말해줬으니까. 이제 알아."

 리암의 손이 수현이의 볼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수현이의 손을 잡았다. 깍지를 꼈다. 차가운 손가락이 뜨거운 손가락 사이에 파고들었다. 리암이 깍지 낀 손을 들어올려 수현이의 눈앞에 가져다 댔다. 수현이의 약지에 낀 은빛 까르띠에 반지와, 그 위에 레이어링된 푸른빛과 붉은빛이 공존하는 보석 반지가 형광등 아래에서 빛났다. 리암의 약지에도 같은 반지들이 있었다.

 "이거 끼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한테 쉽게 줘도 된다고 해?" (*다른 사람한테는 쉽게 안 그럴 거고 여자친구에게만 이런다는 뜻)

 리암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섞였다. 수현이를 놀리는 것이었다. 수현이가 리암에게 아닌 건 아니라고 하라고 했으니, 리암도 같은 말을 돌려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션은 여전히 리암을 꾸짖을 생각인 듯 탄식하며 말을 이었다.

 

 "무서웠는데 왜 다 해도 된다고 했어?! 내가 그 말 덥석 물고 널 통제하려 들면 어쩌려고!"

 

 리암의 눈이 한 번 크게 깜빡였다.

 화가 난 것인지, 걱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리암의 뇌가 한국어를 해석하는 동안 수현이의 표정이 먼저 리암의 가슴 안쪽을 찔렀다. 작은 얼굴. 작은 몸이 리암의 코트 앞에서 리암을 꾸짖고 있었다. 리암의 입술이 반쯤 열렸다가 닫혔다. 열렸다가 또 닫혔다. 물고기처럼. 할 말이 있었는데, 수현이의 기세가 리암의 한국어 회로를 완전히 단락시켜 버렸다. Чёрт. Она права.(젠장. 수현이 말이 맞아.) 리암의 속마음이 인정했다. 무서웠으면서 다 해도 된다고 한 건, 논리적으로 모순이었다. 리암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거."

 리암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깍지 낀 손에 힘이 들어갔다 풀렸다. 수현이의 뜨거운 손가락 사이에서 리암의 차가운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리암의 시선이 수현이의 눈에서 벗어나 옆으로 흘렀다. 복도 벽. 형광등. 천장의 얼룩. 아무 데나. 수현이의 얼굴만 아니면 됐다. 리암의 귓볼이 귀 끝까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목덜미까지 번진 핑크빛이 코트 깃 안쪽으로 숨어들고 있었다. 리암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를 악물었다. 한국어가 혀 위에서 뒤엉키고 있었다. 설명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왜 무서우면서도 괜찮다고 했는지. 그 이유가 리암의 가슴 안쪽에서 뜨겁게 돌고 있었는데, 그것을 한국어로 꺼내는 순간 전부 엉뚱한 모양이 될 것 같았다.

 "⋯⋯수현이니까."

 결국 그것밖에 나오지 않았다. 리암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세 음절. 수현이니까. 그 안에 담긴 것이 너무 많아서 리암의 서투른 한국어로는 풀어낼 수 없었다. 수현이니까 무서워도 괜찮았다. 수현이니까 다 내어줘도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수현이가 진짜로 덥석 물어도, 리암은 그 이빨 자국이 남는 게 좋을 것이었다. 시베리아의 시설에서 리암을 통제한 것은 시스템이었고, ARCH에서 리암을 관리한 것은 규칙이었다. 그 어떤 것도 리암에게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그런데 수현이는 물었다. 해도 되냐고. 싫지 않냐고. 그리고 지금은 왜 괜찮다고 했냐고 화를 내고 있었다. 리암이 자기 자신을 너무 쉽게 내어준다고. 리암의 심장이 갈비뼈 안에서 쿵쿵거렸다. Вот поэтому. Именно поэтому.(그래서야. 바로 그래서.) 리암의 속마음이 러시아어로 완벽한 문장을 만들었지만, 입 밖으로 나온 것은 서투른 한국어 조각들이었다.

 "수현이가, 통제해도. 나 도망 안 가. 무서워도."

 리암의 시선이 벽에서 돌아와 다시 수현이의 눈에 닿았다. 하얀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 안에 비친 수현이의 작은 얼굴이 일렁였다. 리암의 자유로운 손이 올라와 자기 뒷목을 쥐었다. 창백한 손가락이 목덜미의 짧은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몸짓. 리암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러시아어가 혀끝까지 차올랐다가 삼켜졌다. 한국어로 말해야 했다. 수현이가 알아들을 수 있게. 리암이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차가운 입김이 수현이의 이마 위로 흩어졌다.

 "근데 수현이."

 리암이 고개를 숙였다. 몸이 수현이 쪽으로 기울었다. 깍지 낀 손을 잡아당겨 수현이를 반 걸음 더 가까이 끌어왔다. 수현이의 가슴이 리암의 코트 앞섶에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 리암의 목소리가 속삭임으로 바뀌었다. 낮고, 느리고, 한 글자씩 또박또박.

 "수현이가 진짜 물면, 나 안 뿌리쳐. 그냥 더 목 내밀어."

 그 말을 들은 수현이는 이전보다 더 큰 소리를 낼 수 있다고 자랑하듯 비명과 같은 소리로 답했다.

 

 "뭐어?! 목을 더 내밀겠다고! 냥이야, 제발!"

 

 리암의 귓바퀴 옆에서 터진 그 외침이 리암의 고막을 울렸다. 리암의 머리가 살짝 뒤로 젖혀졌다. 가까이서 들으니 더 컸다. 리암의 하얀 눈동자가 수현이의 얼굴 위에 멈추었다. 잿빛 눈이 커져 있었다. 볼이 붉었다. 화가 난 건지 당황한 건지. 아마 둘 다. 리암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참으려 했다. 참아야 했다. 수현이가 진지하게 꾸짖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참을 수가 없었다. 수현이의 표정이 너무. Слишком милая. Невозможно.(너무 귀여워. 불가능해.) 리암의 입술 사이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낮고 짧은, 코끝으로 빠져나가는 종류의 웃음. 리암이 웃는 것을 본 사람은 ARCH 안에서도 손에 꼽았다. 그런데 수현이 앞에서는 자꾸 이렇게 됐다.

 "응."

 한 글자. 리암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리암의 깍지 낀 손이 수현이의 손을 잡아당겨, 리암의 가슴팍에 수현이의 손등을 갖다 댔다. 코트 안쪽으로 전해지는 심장 소리가 수현이의 손바닥에 닿았을 것이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창피할 정도로. 리암의 귓볼이 귀 끝까지 익어 있었고, 목덜미의 핑크빛이 코트 깃 위로 번져 나와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리암의 눈은 웃고 있었다. 하얀 눈동자 안에서 형광등 빛이 부서지고 있었다. 수현이만 보고 있는 눈.

 "수현이가 물면, 나 여기."

 리암의 자유로운 손이 올라와 자기 목의 옆선을 톡 두드렸다. 창백한 피부 위로 핏줄이 희미하게 비쳤다. 리암이 고개를 살짝 기울여 목을 드러내 보였다. 장난이었다. 수현이를 놀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리암의 심장은 장난이 아니었다. 갈비뼈 안쪽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리암의 귀에까지 울렸다.

 "도망 안 간다고 했어. 나, 거짓말 안 해."

 리암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장난기가 빠지고, 그 아래에 깔려 있던 진심이 드러났다. 리암이 수현이의 손등을 자기 가슴에 대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수현이의 작은 손가락 끝이 리암의 심장 바로 위를 누르고 있었다. 쿵. 쿵. 쿵. 리암의 심장이 수현이의 손끝에 대고 말하고 있었다. 리암의 서투른 한국어가 전하지 못하는 것들을. 리암이 고개를 숙여 수현이의 이마 위에 턱을 올렸다. 수현이의 검은 머리카락이 리암의 턱 아래로 부드럽게 퍼졌다. 따뜻했다. 수현이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냄새가 리암의 코끝을 간질였다.

 

 "환장하겠다, 내가 그런 이상한 행동을 하면 제일 먼저 도망쳐야 돼, 냥이가!"

 

 수현이의 목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웠다. 리암의 머릿속에서 '환장'이라는 단어가 굴러다녔다. 환장. 그게 뭐였더라. 리암이 전에 수현이에게 배운 단어 목록을 뒤졌다. 착둥, 순딩, 졸귀, 그리고 환장. 미칠 것 같다는 뜻이었다. 리암 때문에 미칠 것 같다는 뜻. 리암의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이를 악물어 막았다. 지금 웃으면 안 됐다. 수현이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리암의 귓볼은 이미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가슴 안쪽에서 뜨거운 것이 퍼지고 있었다. Она переживает за меня. Опять.(또 나 걱정해주고 있어. 또.) 리암의 속마음이 러시아어로 중얼거렸다. 그 사실이 리암의 갈비뼈 안쪽을 간지럽혔다. 수현이는 리암이 자기 자신을 쉽게 내어주는 것이 싫은 것이었다. 리암의 가치를 리암보다 수현이가 더 높게 매기고 있었다.

 "⋯⋯도망 안 쳐."

 리암이 고집스럽게 대답했다. 꾸짖음에도 한 치의 양보가 없었다.

 도망치라고. 수현이가 이상한 행동을 하면. 리암의 뇌가 그 문장을 씹었다. 수현이의 '이상한 행동'이 뭔지 리암은 이미 경험했다. 잠든 사이 통화 기록을 보고, 팔에 매달리고, 옆자리를 차지하고, 맥박을 확인하던 수현이. 리암은 그 모든 것이 좋았다. 이상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었다. 수현이가 리암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모든 행위가, 리암에게는 자신이 여기에 있어도 된다는 증거였다. 오이먀콘의 시설에서 리암을 확인하는 사람은 없었다. 리암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런데 수현이는 리암의 맥박을 세고, 리암의 통화 기록을 보고, 리암이 누구와 이야기하는지 지켜보았다. 그것이 리암에게 무엇인지, 수현이는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수현이가 이상한 거 하면, 나 더 좋아해."

 리암이 말을 뱉고 나서 자기가 한 말을 곱씹었다. 한국어 문법이 맞는지 확신이 없었다. 아마 맞을 것이다. 수현이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리암의 손이 수현이의 손을 잡은 채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리암의 긴 다리가 한 걸음 내딛다가 멈추었다. 수현이의 보폭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186센티미터와 158센티미터의 걸음은 같을 수 없었다. 리암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몰랐다. 수현이가 뒤에서 헐떡거리며 따라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 이후로 리암은 항상 반 박자 느리게 걸었다. 수현이의 군화 소리가 리암의 군화 소리 사이사이에 끼어드는 리듬. 리암은 그 리듬이 좋았다.

 

 "왜 더 좋아해?! 미치겠다!"

 

 큰 소리에도 익숙해진 듯 리암의 걸음이 멈추지 않았다. 환장에 이어 미치겠다. 리암 때문에 미칠 것 같다는 뜻의 단어가 오늘만 두 번째였다. 리암의 가슴 안쪽에서 뜨거운 것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기쁨인지 쑥스러움인지 구분이 안 됐다. 아마 둘 다였다. 리암의 깍지 낀 손이 수현이의 손가락 사이를 꽉 조였다가 풀었다. 수현이의 작은 손가락 마디가 리암의 차가운 손바닥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리암은 그 감촉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Потому что ты беспокоишься. Потому что тебе не всё равно. Потому что ты злишься, когда я себя не берегу.(네가 걱정하니까. 네가 신경 쓰니까. 내가 나를 안 아끼면 네가 화내니까.) 러시아어로는 이렇게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한국어로는 입 안에서 엉겨붙어 나오질 않았다.

 "⋯⋯왜 더 좋아하냐고?"

 리암이 걸으면서 고개를 돌려 수현이를 내려다보았다. 리암의 시선이 수현이의 잿빛 눈동자 위에 머물렀다. 수현이가 올려다보고 있었다. 화난 얼굴. 걱정하는 얼굴. 부끄러운 얼굴. 전부 섞여 있었다. 리암의 심장이 갈비뼈를 때렸다.

 "수현이, 나한테 화내잖아."

 리암의 목소리가 복도의 공기를 가르며 낮게 떨어졌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다. 리암의 자유로운 손이 하행 버튼을 눌렀다. 기계음이 윙 하고 벽 안쪽에서 울렸다. 리암이 수현이를 마주 보며 등을 엘리베이터 문에 기댔다. 수현이의 손을 잡은 채로. 리암의 백발이 금속 문에 부딪혀 흐트러졌다. 장교 모자의 챙이 살짝 기울었다. 리암의 입술이 움직였다. 천천히. 한국어를 한 글자씩 골라서.

 "다른 사람은, 나한테 화 안 내. 나 다쳐도, 나 위험해도. '잘했어' 하고, 끝이야."

 리암의 하얀 눈이 수현이의 얼굴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형광등 빛이 리암의 눈동자 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 안에 비친 수현이의 작은 얼굴이 일렁였다. ARCH에서 리암은 S급 자산이었다. 임무를 수행하고, 빙벽을 세우고, 아군의 생존율을 높이는 장치. 리암이 위험을 감수하면 보고서에 성과로 기록되었다. 리암이 목을 내밀면 '효율적 판단'이라는 평가가 돌아왔다. 리암의 몸에 상처가 나도, 의무실에서 치료하고 다음 임무에 투입되었다. 그것이 리암이 아는 세계였다. 그런데 수현이는. 수현이는 리암이 자기 목을 내밀겠다고 말한 것에 미치겠다고 소리쳤다. 왜 도망치지 않느냐고. 왜 자기 자신을 지키지 않느냐고.

 "수현이만 그래. 나한테 '왜 안 도망쳐' 하는 사람. 수현이뿐이야."

 리암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끝음절이 떨렸다. 리암의 귓볼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목덜미의 핑크빛이 코트 깃 위로 번져 나와 있었다. 리암이 수현이의 손을 끌어올려 자기 볼에 갖다 댔다. 수현이의 따뜻한 손바닥이 리암의 차가운 뺨에 닿았다. 리암의 눈이 반쯤 감겼다. 고양이가 손길에 기대는 것과 같은 움직임이었다. 리암의 입술이 수현이의 손바닥 안쪽에 스쳤다. 차가운 숨결이 수현이의 손금 위로 흩어졌다.

 "그래서 더 좋아해. 수현이가 나를, 소중하다고 생각하니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딩, 하는 소리와 함께 금속 문이 열렸다.

 

***

 

 냥이야, 그렇게 너를 소중하게 대하는 수현이가 미쳐서 널 통제하면 어떡해야 돼!

 

 냥이야. 수현이의 입에서 튀어나온 그 단어가 리암의 고막을 때렸다. 냥이. 냥콜라이에서 파생된, 수현이만 쓰는 호칭. 리암의 하얀 눈동자가 한 박자 늦게 깜빡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있었고, 안쪽에서 형광등 불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수현이의 잿빛 눈이 리암을 올려다보며 반짝이고 있었다. 화난 얼굴. 걱정하는 얼굴. 그런데 '냥이야'라고 부르는 입술은 볼록하게 내밀려 있었다. 러시아어도, 한국어도, 어떤 언어로도 이 순간을 처리할 수 없었다. Она назвала меня котёнком. Опять. Прямо здесь.(나를 고양이라고 불렀어. 또. 여기서.) 리암의 귓볼이 터질 듯 빨갛게 물들었다. 수현이가 통제하면 어떡하냐고. 리암의 머릿속에서 그 질문이 빙글빙글 돌았다. 어떡하긴. 어떡하긴 뭘 어떡해.

 "⋯⋯냥이 아니야."

 반사적인 부정이었다. 그러나 리암의 귀는 이미 핑크빛을 넘어 빨간색으로 익어 있었고, 자기 볼에 대고 있던 수현이의 손바닥을 놓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려버렸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한 발을 들이밀며 수현이를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수현이의 작은 몸이 리암의 코트 자락에 스치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리암의 엄지가 닫힘 버튼을 눌렀다. 금속 문이 미끄러지며 닫혔다. 복도의 형광등이 사라지고, 엘리베이터 안의 조금 더 따뜻한 조명이 두 사람을 감쌌다. 밀폐된 공간. 리암의 냉기와 수현이의 열기가 좁은 상자 안에서 부딪혔다.

 "수현이가 통제하면."

 하얀 눈동자 안에 수현이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리암의 목소리가 느려졌다. 한국어 단어를 하나씩 집어 올리는 속도.

 "나, 가만히 있으면 돼."

 

 그 대답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리암의 표정에는 고민의 흔적이 없었다. 리암의 하얀 눈이 수현이의 잿빛 눈동자 위에 머물러 있었다. 수현이가 통제하면 어떡하냐고. 수현이가 리암의 통화 기록을 보면 어떡하냐고. 수현이가 리암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끊고, 리암의 손목을 잡아끌면 어떡하냐고. 리암은 그 모든 질문에 같은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됐다. 수현이가 원하는 대로. 리암이 시베리아의 시설에서 배운 것은 생존뿐이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은 온기였다. 수현이는 온기 그 자체였다. 수현이가 리암을 통제한다는 것은, 수현이가 리암을 놓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리암에게 그것보다 안전한 것은 세상에 없었다.

 "⋯⋯근데."

 엘리베이터가 하강하기 시작했다. 바닥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리암의 손이 수현이의 머리카락에서 내려와, 턱 아래를 살짝 받쳤다. 수현이의 고개가 위로 들렸다. 리암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장교 모자의 챙이 수현이의 이마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리암의 입김이 수현이의 입술 위에 닿았다. 차가운 공기. 그 안에 섞인 리암의 체온.

 "수현이도 나한테, 통제받아야 돼. 공평하게."

 리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느리게. 고양이가 장난감을 발견했을 때와 같은 표정. 리암의 엄지가 수현이의 턱선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졌다. 차가운 손끝이 수현이의 피부 위에서 미세한 서리를 남기듯 지나갔다. 리암이 고개를 기울였다.

 

***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가 흔들렸다. 수현이의 목소리가 좁은 금속 상자 안에서 울렸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 리암의 손가락이 수현이의 턱선 위에서 멈추었다. 잿빛 눈동자가 리암을 올려다보며 타오르고 있었다.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리암의 차가운 피부를 녹이고 있었다. 수현이가 말한 것. 수현이가 미쳐서 통제하려고 들면. 리암의 뇌가 그 문장을 러시아어로 번역하고, 다시 한국어로 되돌리고, 또다시 러시아어로 씹었다. Если Сухён сойдёт с ума и начнёт меня контролировать. 리암의 하얀 눈동자가 수현이의 얼굴 위를 천천히 훑었다. 이마. 눈썹. 속눈썹. 코. 볼록한 입술. 화가 나서 빨개진 볼. 리암의 심장이 갈비뼈 안에서 쿵 하고 소리를 냈다. 수현이는 자기가 리암을 다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수현이가 통제하면 리암이 부서질 거라고. 리암의 입 안에서 러시아어 욕이 굴러다녔다. Блядь. 이 사람은 정말.

 "수현이."

 리암의 목소리가 낮게 떨어졌다. 엘리베이터가 하강하는 진동이 발바닥을 통해 올라왔다. 리암의 손이 수현이의 턱에서 내려와 수현이의 양 어깨를 잡았다. 차가운 손바닥이 수현이의 흰 제복 위에 놓였다. 리암이 허리를 숙여 수현이의 눈높이에 맞추었다. 몸이 접히는 각도가 컸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면, 수현이의 눈 안에 은빛 점들이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리암은 그 점들을 좋아했다. 밤하늘 같았다. 시베리아에서 본 겨울 밤하늘.

 "수현이가 미쳐서 나 통제하면."

 리암이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 수현이가 천천히 말해달라고 한 적은 없었지만, 리암이 먼저 천천히 말하고 있었다. 이건 중요한 말이었으니까. 리암의 엄지가 수현이의 어깨 위에서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제복 천 너머로 수현이의 뼈가 만져졌다. 작았다. 리암의 손 안에 통째로 들어올 것 같은 어깨. 리암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이 작은 사람이 리암을 부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스우면서도, 동시에 가슴이 쓰렸다. 수현이는 자기 자신이 무서운 것이었다. 리암을 향한 감정이 커지는 것이, 그것이 통제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 리암은 그 두려움을 알고 있었다. 리암도 같은 두려움을 안고 살았으니까. 능력이 폭주하면 주변의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몸. 사랑하는 사람까지.

 "나, 수현이한테 얼어붙어도 괜찮아."

 리암의 입에서 나온 말이 엘리베이터 안의 차가운 공기를 갈랐다. 리암의 숨결이 하얀 입김이 되어 수현이의 코끝에 닿았다. 리암이 말을 이었다. 느리게. 서툴게. 그러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근데, 그거 아니야. 수현이가 미쳤다고, 나 통제하는 거 아니야."

 리암의 손이 수현이의 어깨에서 올라와 수현이의 볼을 감쌌다. 차가운 손바닥이 수현이의 따뜻한 볼을 덮었다. 수현이의 피부가 부드러웠다. 리암이 세상에서 만져본 것 중 가장 부드러운 것. 리암의 눈동자가 수현이의 눈 속을 들여다보았다. 수현이의 잿빛 눈 안에 비친 자기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빨간 귀. 하얀 머리카락. 흔들리는 눈. 그 안에 비친 자기 모습이 싫지 않았다. 수현이의 눈에 비친 리암은, 리암이 아는 리암보다 훨씬 소중한 사람처럼 보였다.

 "수현이가 나 걱정하는 거야, 그거. 나 좋아하는 거야, 그거."

 리암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끝음절이 떨리는 것을 리암 스스로도 느꼈다. Чёрт. 목소리가 왜 이래. 리암의 속마음이 투덜거렸다. 엘리베이터가 목적지 층에 도착하며 감속하는 진동이 올라왔다.

 

 

***

 

 고쳐주거나 도망치거나. 리암의 뇌가 그 문장을 삼켰다. 러시아어로 번역하고, 다시 한국어로 되돌리고, 또 씹었다. Исправить или сбежать. 수현이는 울상이었다. 잿빛 눈동자가 물기를 머금고 흔들리고 있었다. 158센티미터의 작은 몸이 리암의 양손 안에서 떨고 있었다. 리암의 가슴 안쪽에서 무언가가 조여왔다. 수현이가 걱정하고 있었다. 리암을. 리암이 누군가에게 이용당할까 봐. 리암이 순해서 부서질까 봐. 리암의 입 안에서 웃음이 새어 나올 뻔했다. 순하다고. 리암을. Сука, меня назвали мягким.(미친, 나를 순하다고 했어.) 리암의 속마음이 어이없어했다. 시베리아의 영하 71도에서 살아남은 몸을. ARCH의 S급 센티넬을. 전장에서 빙벽으로 퇴로를 차단하고 적을 관 속에 가두는 사람을 순하다고. 그런데 웃기게도, 리암은 그 말이 싫지 않았다. 수현이 앞에서는 순한 것이 맞았으니까.

 "⋯⋯순해?"

 리암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볼을 감싼 양손이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볼살이 모여 수현이의 입술이 앞으로 볼록하게 밀려 나왔다. 리암의 하얀 눈동자가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눈 안에 웃음기가 번졌다. 무표정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곡선. 리암의 엄지가 수현이의 눈 아래를 쓸었다.

 "나, 순한 거 아니야. 수현이한테만 그래."

 엘리베이터가 도착 층에 멈추었다. 딩, 하는 알림음이 울리고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복도의 차가운 공기가 밀려들어왔지만 리암은 움직이지 않았다. 수현이의 볼을 잡은 채로. 문이 열리고, 복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리암의 발이 닫힘 버튼을 밟았다. 군화 끝이 패널을 누르자 문이 다시 미끄러지며 닫혔다. 다시 밀폐된 공간. 리암과 수현이, 둘만의 상자. 리암이 허리를 더 숙여 수현이의 눈높이보다 아래로 내려갔다. 수현이를 올려다보는 각도. 장교 모자의 챙이 뒤로 밀려 리암의 이마가 드러났다. 백발 사이로 보이는 창백한 피부. 빨갛게 물든 귓볼. 리암의 눈이 수현이의 잿빛 눈동자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수현이 말, 알아들었어. 고쳐주거나, 도망치거나."

 리암의 목소리가 또박또박 떨어졌다. 서투른 한국어가 아니었다.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이 실려 있었다. 리암의 손이 수현이의 볼에서 내려와 수현이의 양손을 잡았다. 수현이의 작은 손가락들이 리암의 차가운 손바닥 안에 포개졌다. 리암이 수현이의 손을 들어올려, 자기 입술 앞에 가져다 댔다. 수현이의 약지에 낀 두 개의 반지. 리암의 입술이 그 반지 위에 닿았다. 차가운 금속과 수현이의 따뜻한 피부가 동시에 입술에 전해졌다.

 "근데 수현이. 나 도망 안 쳐."

 리암의 입술이 수현이의 약지 위에서 움직이며 말을 이었다. 숨결이 수현이의 손등 위로 퍼졌다. 차가운 공기. 그 안에 실린 체온.

 "도망은 안 쳐. 대신에."

 리암이 수현이의 손을 내리고, 일어섰다. 리암의 손이 수현이의 머리 위에 올라갔다. 큰 손바닥이 수현이의 검은 머리카락을 덮었다. 쓰다듬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얹은 것. 무거운 손. 리암의 하얀 눈이 수현이를 내려다보았다. 표정이 바뀌어 있었다. 나른한 고양이도, 수줍은 연인도 아니었다. S급 센티넬. 전장에서 빙벽을 세우고 적의 퇴로를 지우는 사람의 눈. 그 눈이 수현이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것은 위압이 아니라, 묵직한 다짐이었다.

 

***

 

 "대신에 뭐, 뭐, 뭐! 냥이야, 내가 너 '히히 아무 데도 못 가' 하고 내 방애 가둬두고 한 발자국도 못 나가게 하면 어쩔 건데?!"

 

 리암의 뇌가 그 문장을 받아들이는 데 0.5초가 걸렸다.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데 0.3초. 그리고 그 의미가 리암의 머릿속에서 이미지로 펼쳐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수현이의 방. 따뜻한 온도. 잠금된 문. 수현이와 리암, 둘만.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리암. 리암의 심장이 갈비뼈를 때렸다. 한 번이 아니라 연속으로. 쿵. 쿵쿵. 리암의 귓볼이 이미 빨갛게 익어 있었는데, 목덜미까지 붉은 기가 번져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코트 깃 아래로 숨길 수 없을 만큼. Она хочет запереть меня в своей комнате. Не выпускать. Ни шагу.(자기 방에 나를 가두겠다고. 한 발짝도 못 나가게. 한 발짝도.) 리암의 속마음이 그 문장을 반복해서 씹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가두다'라는 단어는 리암에게 공포여야 했다. 7년 전 시베리아의 영구동토 속에 갇혔던 기억. 라임의 폭주한 냉기가 만든 얼음 감옥. 숨을 쉴 수 없었던 어둠. 그런데 수현이가 말하니까, 그 단어가 전혀 다른 색으로 칠해졌다. 가둬두겠다는 말이 '너를 놓지 않겠다'로 들렸다. 한 발자국도 못 나가게 하겠다는 말이 '네가 필요하다'로 들렸다. 리암의 폐 안에서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Блядь, что со мной не так.(씨발, 나 뭐가 잘못된 거야.)

 "⋯⋯."

 리암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수현이의 머리 위에 올려놓았던 손이 천천히 내려왔다. 리암의 차가운 손가락 끝이 수현이의 목선에 닿았다. 거기서 멈추었다. 수현이의 맥박이 손끝에 전해졌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하얀 눈동자가 잿빛 눈을 내려다보았다. 엘리베이터의 형광등 불빛이 리암의 백발에 반사되어 푸른빛을 흩뿌렸다. 리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수현이가 나, 방에 가둬?"

 평소의 더듬거리는 한국어가 아니었다. 한 음절 한 음절이 천천히, 그러나 또렷하게 떨어졌다. 리암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수현이의 등이 엘리베이터 벽에 닿아 있었다. 리암의 한 손이 수현이의 머리 옆 벽에 짚혔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 금속 벽이 울렸다. 리암의 팔이 수현이의 머리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문 잠그고, 못 나가게 하고."

 리암이 수현이의 말을 되풀이했다. 천천히. 음미하듯이. 리암의 자유로운 손이 올라와 수현이의 턱을 잡았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수현이의 작은 턱이 포개졌다. 수현이의 고개가 위로 들렸다. 리암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코끝이 닿을 듯한 거리. 리암의 하얀 눈 안에 수현이의 얼굴이 가득 찼다. 리암의 동공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흥분. 기대. 그리고 그 아래 깔린, 뜨거운 갈망. 리암의 입술이 수현이의 입술 바로 위에서 움직였다. 숨결이 섞이는 거리.

 "Хорошо."

 러시아어가 먼저 튀어나왔다. 좋다는 뜻. 리암의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낮고 거친 울림. 리암의 엄지가 수현이의 아래 입술을 스쳤다. 부드러운 살결이 손끝에 닿자 리암의 숨이 흔들렸다. 입김이 한층 짙어졌다.

 "⋯⋯좋아. 가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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